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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3 - 경과

by 김잿솜 2022. 2. 17.

이런 블로그는 세상에 또 없을거다.

어쩌면 많을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블로그를 꽤 오래 방치했다.

그럼에도 한두명이 간간히 검색으로 들어오더라.

실수로 클릭했거나, <Anecdote>리뷰같은 것에 낚였거나 그런 경우로 생각된다.

 

방치한 핑계야 오만가지를 댈 수 있지만

가장 큰 건 크게 쓸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일들은 개인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너무 빠르게 변화하며 흘러가고 있고

그 과정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기록이 크게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방치되는 블로그야 많겠지만

이렇게 수시로 말을 바꿔대는 블로그는 또 없을것이다.

나 자체가 그런 사람이라 그러려니 하고 봐야한다.

 

자세한 근황은 다음에 담고, 흘려놓은 말부터 주워담자면

개발하던 (정확히는 시작밖에 안한) 기획들 전부 엎었다.

이것도 이유를 대자면 오만가지를 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변덕이다.

 

1~2주간 크게 아팠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달고 사는 지병이 터졌다.

약을 바꾸거나 늘리면 천천히 회복되는 병이라

마음 속에 불안이 찾아왔다가도 금방 괜찮아졌다.

 

그동안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포토닉 다이스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일까?

RM은 될만한 프로젝트인가?

일련의 학습과 프로젝트 시작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이 많은가?

무엇 하나 확신할 만한 대답을 던질 수가 없었다.

 

내가 왜 나 자신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나.

누군가 '왜 게임을 개발하고 싶으세요?' 했을 때 종종 하는 대답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고, 특히 게임은 제가 즐겨 하는 취미이다보니...'

사회적으로 좋은 대답이긴 한데, 핵심은 전부 빠져있다.

 

조금 솔직해져보자.

이것은 근본적인 대답이 아니다.

'왜 하필 개발인가요?', '왜 하필 게임인가요?'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우회적인 답변이다.

 

잠시 마음에 손을 얹고 '왜?' 를 떠올려본다.

'나는 왜, 게임을 만드려 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게임이 좋아서다.

어릴 적 부터 즐겨 했고, 가장 큰 취미이니까.

다만 게임을 즐겨하는 사람이 모두 게임 개발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즐겨읽는 사람이 모두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듯이.

 

하는 것과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다.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예술병'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답답해서.

 

세상에 경이롭고 감탄스러운 게임도 많은 반면,

대충 기성 제품을 베끼거나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내놓는 저질의 게임도 많다.

이런 것들을 마주했을 때 분노를 느낀다.

'차라리 내가 만들어야겠다.' 하는.

 

한편으로는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세지가 많다.

글로 투고하기에 글은 파급력이 낮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실력의 문제가 크다.

백날천날 글공부 해봐도 나의 길은 아닌 것 같다.

 

예술병을 제외하면 또 하나의 이유가 남는데

'돈'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무얼 하든 돈이 필요하다.

돈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고, 행복의 전부도 아님을 나는 확신한다.

다만 돈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잘 만들어진 게임은 돈을 만든다.

돈이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하나의 중간 목표로써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정도가 '왜'에 대한 솔직한 답이 되겠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고

하고픈 예술 활동을 하는 길도 있다.

원래 걸으려던 인생의 길이었다.

 

작년 겨울 즈음 문제가 생겼다.

희귀 질환에 걸려 일반적인 직장인의 패턴으로는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장은 퇴직금으로 어느정도 버티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생계 유지도 해야하고

그렇게 되면 내가 하려던 활동들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애초에 생계 유지를 어떻게 할 지 부터 막막했다.

 

나는 게임을 예술로서 바라보는 시각에 무게를 두지만,

게임이 사업성을 짙게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올해 초 부터 시작된 사무실 여정은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을 걸으려는 욕심과 생계 유지를 하려는 욕심이 합쳐지며 시작되었다.

 

누워있던 기간동안 현실적인 문제들을 바라보았다.

당장의 병원비나 생활비

더 길게 보면 불려나가야 할 내 경력 등

지금 이대로는 무엇 하나 이룰 수가 없었다.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무 막막해. 미래가 막연해서 막막한게 아니라, 미래에 이룰 수 없는 것들이 확연히 보여서 막막해.'

동의한다.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보이는 미래가 더 무섭다.

 

내가 본 미래는

'이러다가 굶어 죽겠다.' 이다.

구구절절 넋두리를 늘어놓아보았다.

결론은 '돈 벌 궁리를 하자.'.

 

그럼 어떻게 벌어야 할까?

아직 확답을 놓지 못한다.

당분간은 사업이나 프로젝트의 방향성을 잡아야겠다.

더 나아가 잿솜출판의 방향성까지.

 

 

1월에 만든 PC 배경화면. 게임/문학 컨텐츠가 대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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