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음7 김솜 - 무게 제 낯 비춘 하늘이 무심하게 맑던 날 국화, 너는 입을 벌린 채 죽어있었다 해 한 번 질 때 수억이 죽고 산다는 말 국화, 너는 입을 다문 채 죽어있었다 2024. 2. 27. 김솜 - 자갈 때때로 자갈밭 파도 소리 앞에 서면 내가 사랑했던 돌 저는 작은 모래 조각을 찾습니다 -나를 아시나요 내가 사랑하는 돌 저가 떠올리면 둥근 추억이 됩니다 -나를 기억하나요 내가 사랑할 돌 저에게 모난 품을 내어줍니다 -나를 안아줘요 저는 나를 모르겠어서 출렁이는 자갈 사이 헤매입니다 떨리는 두 손으로 한껏 출렁이는 자갈들을 헤아립니다 2022. 6. 11. 김솜 - 달에게 쓰는 편지 - 손이 희멀겋다 달빛이 비치어서 피가 안 통해서 창백하게 죽어가는 건가 새하얗게 살아가는 거지 척추에서 가시처럼 돋은 마디 마디에서 손을 거쳐 다시 마디 과학이 말하길 절지가 아닌 나 피부를 감싼 창백이 이리도 단단하건만 - 손을 둥글게 말아 만든 흰색 망원경 -어릴 적 써본 것과 닮았다 유리창을 렌즈 삼아 하늘을 보니 나를 보고 하얗게 질린 것 같아 미안 시작 또는 끝에 대한 질문 우연일까 필연일까 답은 모르고 답을 아는 너는 죽어있어 말할 수 없다 더 이상 마디를 잇지 못한 나는 그냥 2022. 2. 17. 김솜 - 부화(孵化) - 나는 짧은 글을 좋아해 이러면 미운 오리가 되고 나는 시 짓기를 좋아해 이러면 고운 오리가 되고 미우나 고우나 샛노란 오리 하여간 글은 쓰고 보아야지 하얀 것 껍질을 밖으로 쪼아대던 날 몰아세운 부리는 날카로워 빨강 펜 마킹은 흔한 가식 꼴이 두루미를 닮아서인가 온통 회색 명암을 드리운다 길기만 하지 매가리가 없어 이러면 미운 무엇이 되나 도통 잡히지 않는 태 시기는 태가 안나 시집은 때가 안 타 누군가가 벗어놓은 껍질 흰 낱장을 넘기고 넘기면 보이지 않는 무수한 빨간 선 부수어 낸 조각이 더 아름다워 여태 둥그런 것이 부끄러워진다 책장 사이로 늙은 두루미 잡지에는 삼삼오오 아기 오리 여기 색이 없으면서 새도 아닌 게 하나 끼어있어 이러면 당신 이름이 뭔가요 아, 저요 저는 회색인간입니다 2022. 1. 28.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