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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수필, 소설

김솜 - 부화(孵化)

by 김잿솜 2022.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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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짧은 글을 좋아해
이러면 미운 오리가 되고
나는 시 짓기를 좋아해
이러면 고운 오리가 되고
미우나 고우나 샛노란 오리

하여간 글은 쓰고 보아야지
하얀 것 껍질을 밖으로 쪼아대던 날

몰아세운 부리는 날카로워
빨강 펜 마킹은 흔한 가식
꼴이 두루미를 닮아서인가
온통 회색 명암을 드리운다

길기만 하지 매가리가 없어
이러면 미운 무엇이 되나
도통 잡히지 않는 태

시기는 태가 안나
시집은 때가 안 타

누군가가 벗어놓은 껍질
흰 낱장을 넘기고 넘기면
보이지 않는 무수한 빨간 선
부수어 낸 조각이 더 아름다워
여태 둥그런 것이 부끄러워진다

책장 사이로 늙은 두루미
잡지에는 삼삼오오 아기 오리
여기 색이 없으면서 새도 아닌 게 하나 끼어있어
이러면

당신 이름이 뭔가요
아, 저요
저는 회색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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